原文:
스포일러성 발언이 될 수 있어 어느 작품인지는 찝을 수 없지만 비극으로 점철된 삶을 사는 주인공이 나오는 몇몇 작품의 마지막을 기억한다. 그들은 지상이 아닌 어디론가 간다. 물이라든지 하늘이라든지. 이런 작품을 보고 있자면 실제로 비극에 처한 누군가를 품어줄 여력이 없는 우리의 공동체를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지곤 한다.
<이월>도 이러한 작품들과 맥락을 함께 한다. ‘민경’은 말 그대로 ‘살아있기에 살아가는’ 사람이다. 유일한 보호자인 아버지는 감옥에 있고 그나마 있는 방 한 켠 마저 보증금이 다해 컨테이너에서 잔다. 돈을 마련하려 그 컨테이너에서 성을 팔아 돈을 모은다. 공시생이지만 학원 다닐 돈이 없어 도강을 하다가 쫓겨난다. ‘민경’의 배경만 보고 있자면 시련에 처한 주인공이자 동정 받아야 할 대상으로 느껴질 수 있으나 ‘민경’은 작품 내외적으로 그 동정심과 거리를 둔다. 아무 대가도 없이 ‘민경’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여진’의 치부를 들춰내는 말을 ‘여진’의 짝사랑 상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던가 ‘여진’이 선물로 준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팔려고 하는 대목은 작품의 인물과 연민으로 스크린을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과 거리를 두기 위한 장치로써 충분하다.
이렇게 동정 받는 객체가 되기를 포기하는 주인공은 주체가 되어 ‘생존’의 의미를 더욱 강조 시킨다. 동정을 받는 것은 끔찍이도 싫어하면서도 본인이 친구로도 여기지 않았던 ‘여진’의 집에 머무르거나 성을 팔았던 대상인 ‘진규’집에 식모 역할을 하며 머무르는 장면은 ‘민경’이 자존심 보다는 ‘살아남기’를 택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녀에게 살아남기 이상의 행복이나 평범한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행복 같은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진규’의 아들인 ‘성훈’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혼자 도망을 가는 씬은 본인에게 있어 익숙하지 않고 이질적인 ‘행복감’이라는 것으로부터의 도피였을 터이다.
이런 주인공의 존재는 무척이나 각별하다. 다른 비극에 처한 인물들과 달리 ‘민경’은 스스로 소위 ‘악녀’가 되기를 자처하면서 연민감과 분리되고 선한 자와 악인의 구분을 희미하게 만들며 언더도그마의 굴레에서 벗어난다. 이로 인해 작품에 나오는 주위 인물들의 삶으로 초점이 옮겨진다. 정확히는 삶의 의미로 말이다. 포일 캐릭터나 주인공을 압박함으로서 연민을 자아내는 장치가 아닌 인간으로서, 주변 인물들도 함께 비춰진다. 모두들 살아나가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악녀’는 끝내 엔딩 씬에서 하늘로 날아간다. ‘민경’이 머무르고 있던 컨테이너가 크레인으로 인해 하늘로 뜬다. ‘민경’은 작중 한 번도 보여 준 적이 없는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모두들 꾸역꾸역 몸을 비벼대며 살아가는 땅바닥을 벗어날 때 비로소 말이다. 나는 그녀가 어떻게든 지상에서 살아나갈 줄 알았다. 실제로 ‘살아남기’에 익숙한 그녀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엔딩 씬에서 그녀의 모습을 볼 때 나는 그녀가 지상에서 소외 되어 있었던 존재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악녀’가 아니라 상처 받기 싫었을 뿐이다. 아, 소외된 자가 갈 곳은 정말로 이계 뿐인 건지. 우리가 발 붙이고 있는 곳이 아니라 다른 어딘가 에서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건지. 그래도 이런 마무리가 누군가에게는 해피엔딩이길 빈다.
译文:
有可能涉及剧透,所以不能指出具体是哪部作品,但依然记得有几部电影的结尾出现以悲剧点缀人生的主人公。他们不是要去地上,而是要去某个地方。 去水里也好,去天空也罢。 同为人类的我们其实没有余力去解救处于悲剧中的某个人,每当看着这样的作品时,我的心里就很不是滋味
《二月》与这些作品一脉相承, “敏景”顾名思义就是“因为活着而生活”的人。作为唯一监护人的父亲身在狱中,连仅有的一间房都是用押金租的集装箱。 为了筹钱,不得已在集装箱里卖身。虽然是公费生,但由于没钱交学费,所以在蹭课时才会被赶出来。单单只看“敏景”的背景,会觉得她既是遭受考验的主人公,同时也是应该被同情的对象,但“敏景”在作品内外都与同情心相去甚远。"茹珍"不计代价温暖地对待“敏景”,而“敏景”却说撕下“茹珍”的遮羞布,对"茹珍"的单恋对象不屑一顾,不管不顾的地出售"茹珍”送给自己的衣服。这些情节的充分设置,都是为了让观影的观众尽量不要对作品中人物的产生怜悯。
主角是放弃成为受同情对象的主人公,这样的设定更加强调“生存”的意义。一方面厌恶被别人同情,另一方面却选择住在并不认为是自己朋友的"茹珍"家里,亦或是在卖身对象“镇奎”家做保姆,这些场面说明主人公“敏景”选择“苟活”,而且不是自尊。对她来说,比活着更好的幸福或普通人能享受的幸福,只是奢侈品。和“镇奎”的儿子“成勋”一起度过幸福时光,忽然独自逃跑的那一幕,从那时起开始逃避对她本人来不熟悉且另类的“幸福感”。
这种主人公的存在非常特别。与其他处于悲剧中的人物不同,“敏景”的所作所为是为了成为她所谓的“恶女”,但又与怜悯感格格不入,模糊了善者与恶人的界线,脱离了底层教条的束缚。因此,焦点才会转移到作品中出现的其他人的生活之中。准确地说,这才是人生的意义。不是通过压迫支线角色或主人公而引发的怜悯,而是作为人,与周围人物共同渲染展现出来的。就像大家所说的,谁都有活下去的理由。
“恶女”在结尾处飞向天空。“敏景”所住的集装箱,被吊车腾空吊起。“敏景”露出了从未在剧中展现过的最幸福的笑容。直到大家陆陆续续动身,离开赖以生存的地面。我本以为她无论如何都要在地上生活。其实,她是不习惯于“苟活”下去的。但当我在结尾看到她的样子时,才后知后觉她是超脱人世之外的存在。她不是“恶女”,只是不想受伤罢了。啊,与世间格格不入的人去的地方真的只有异世界吗?那里不是我们的立足之地,只有在某个其他地方才能找到幸福吗?但愿这样的结局对某些人来说还算是圆满吧!
校对: yuye1985
译者: 李jj1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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